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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섹스의 추억 ♣*

창산 2021. 10. 4. 17:55






♣ 마지막 섹스의 추억 ♣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꺼플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찟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 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 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 글(詩) : 최영미
▶ 낭송 : 유현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
/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다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최영미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홍익대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외 7편의 시를 발표
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1994년 첫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
1997년 [시대의 우울]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