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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불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

창산 2024. 11. 12. 09:40







노불레스 오블리주
(Nobless Oblige)의 기원

로댕작 “깔레의 시민”
(위 imge)
불후의 명작이지만,

이 작품에 숨은
노불레스 오블리주’의
숭고한 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어떻게 하던
자기 아들만은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나라의
일부 정치인들과는
너무도 먼 거리가 있어
착잡한 심정입니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을
따라 올라가면 “깔레”라는
작은 항구도시가
있습니다.

인구 12만인 이 항구는
영국의 도버해협과
불과 20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영국과 프랑스 파리의
중간이기도 합니다.

소도시인 “깔레”는
세계의 미술품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깔레” 시청에
전시되어있는 로댕의
“깔레의 시민”이란
조각으로 6명이 목에
밧줄을 감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는 조각입니다.

이 조각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깔레”시민의
명예이며
프랑스의 긍지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귀족의 의무를
뜻하는
“노불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의 상징이 바로
이 로댕의 “깔레의 시민”
이기 때문입니다.



“깔레의 시민”에 얽힌
스토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때
“깔레” 시는 끝까지
영국에 저항하다
구원 군이 오지 않아 1347년
끝내 항복하게 된다.

영국 왕 에드워드3세는
누군가는 그 저항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6명의 깔레 시민이 목에
밧줄을 매고
영국군 진영으로 걸어와
처형당할 것을
요구했다.

이때 깔레에서 제일 부자인
‘외스타슈드 생 피에르’ 가
선뜻 나섰다.

그러자
시장인 ‘장데르’가 나섰고
이에 부자 상인인
‘피에르 드 위쌍’이
나섰다.

게다가 ‘드 위쌍’의 아들마저
아버지의 위대한 정신을
따르겠다며
나서는 바람에 이에
감격한 시민 3명이
또 나타나 한명이 더
많은 7명이 되었다.

‘외스타슈드’ 는
제비를 뽑으면 인간인 이상
행운을 바라기 때문에
내일 아침 처형장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제의 했다.

다음날 아침 6명이
처형장에 모였을 때
‘외스타슈드’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시민들이 그의 집으로
달려갔을 때
‘외스타슈드는 이미
자살한 시체로
변해있었다.

처형을 지원한 7명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으면
순교자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자신이 먼저 죽음을
택한 것이다.

이에 영국 왕비가
크게 감동하여
‘에드워드3세’에게
깔레 시민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애원하였다.

당시 왕비는
임신중이었기 때문에
왕은 왕비의 소원을
받아들여 처형을
취소했다.

그 후 깔레는 노불레스(귀족)
오블리주(의무)라는 단어의
상징으로 등장했으며

몇 백 년이 지난 후
깔레시의 요청으로
로댕이 10년 작업 끝에
“깔레의 시민”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노불레스 오블리주는
이처럼 국방에서 비롯된
애국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2차 대전 때
영국 에리자베스 여왕이
(당시 공주신분)
수송부대 하사관으로
근무한 것이나

영국 왕자들이 최근
이라크 전쟁에서
일선에서 근무하는 등의
시범이
“노불레스 오블리주”
의 전형입니다.

“노불레스 오블리주”
얼마나 멋진 단어인가?

출처 : 이메일로 받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