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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창산 2025. 4. 16. 09:07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눈 녹은 해토에서
마늘 싹과 쑥잎이
돋아나면
그때부터 꽃들은
시작이다

​ 2월과 3월 사이
복수초 생강나무 산수유
진달래 산매화가 피어나고
들바람꽃 씀바귀꽃 제비꽃
할미꽃 살구꽃이
피고 나면

​ 3월과 4월 사이
수선화 싸리꽃 탱자꽃
산벚꽃 배꽃이 피어나고
뒤이어 꽃마리 금낭화
토끼풀꽃 모란꽃이
피어나고

​ 4월의 끝자락에
은방울꽃 찔레꽃
애기똥풀꽃
수국이 피고 나면



5월은 꽃들이 잠깐 사라진
초록의 침묵기
바로 그때를 기다려
5월 대지의 심장을 꺼내듯
붉은 들장미가 눈부시게
피어난다

일단 여기까지,
여기까지만 하자

​ 꽃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대로 피어난다

누구도 더 먼저 피겠다고
달려가지 않고
누구도 더 오래 피겠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꽃은 남을 눌러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겨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 자신이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

꽃은 서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꽃이 피었다고 말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별이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그가 변했다고 말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무너졌다고
말하지만

꽃도 별도 사람도 세력도
하루아침에 떠오르고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나빠지고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좋아질 뿐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세상도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조금씩 조금씩
변함없이 변해간다

- 박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