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두 개
“엄마... 나 오늘부터 도시락 두 개 싸 줘... 한 개로 부족하단 말이야 “ 아이가 요즘 부쩍 크려고 그러는지 밥 타령을 하네요. 도시락도 하나 따로 준비해 놓고 반찬도 이것저것 담아 놓고선 바라보고 섰습니다. 도시락 하나 더 싸는 게 이리도 힘들까 싶어서요. ◈ 1 매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며 늦게 오던 아들이 오늘은 시험을 치고 일찍 집으로 왔습니다. 도시락 가방을 현관에 놓고선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런데 도시락 하나는 그대로 가져왔네요. 오늘은 배가 덜 고팠나 싶어 방으로 들어가 보니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 2 "지석아! 왜 그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 고개를 들어 제 가슴에 안기더니 그제야 큰 소리로 울어버리는 아들. 그동안 하나 더 싸간 도시락은 아들의 짝꿍이 집안 사정으로 도시락을 못 싸 오게 되어 싸다 준 거라는 말을 하며 울먹였습니다. ◈ 3 “근데 오늘은 왜 그냥 가져왔니? “라고 묻는 말에 친구 엄마가 암 수술을 하는 날이라 어젯밤 병원에서 꼬박 새우느라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는 아들의 말이었습니다. 이제껏 힘든 친구를 위해 학교를 마치고선 같이 병원에 가 병간호를 해줬다는 말도 함께요. “그랬구나. 친구가 아주 힘들었겠구나. “ ◈ 4 애써 아들의 등을 토닥거린 후 부엌에 와서 한참을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동안 친구 도시락 싸가랴, 병원에서 간병인 노릇 하랴, 이젠 남의 아픔도 헤아릴 줄 아는 아들이 대견스러워 피식 웃음이 나오더군요. 비 오는 저녁 오늘도 아들은 늦나 봅니다. ◈ 5 아홉 시가 넘었는데 말이죠. 열 시가 다 되어서야 파김치가 되어 들어온 아들은 더 걸어갈 힘이 없는지 현관 앞에 주저앉고 맙니다. “울 아들 오늘도 고생했네...” “엄마.. 수술은 잘 되었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근데.... 말끝을 흐리든 아들의 눈빛은 무언가 말하고 싶은 애절함으로 저를 향해 있었습니다. ◈ 6 “친구가 초등학교 다니는 남동생이 둘이나 있대...” “그렇구나” 말을 잇지 못하고 등을 보인 채 너털 너털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제 맘엔 아들의 그림자 위로 겹쳐지는 알 수 없는 애잔함이 다가왔습니다. ◈ 7 며칠 후 집에 온 아들이 호들갑을 떨며 “엄마,,,, 친구 집에 웬 아주머니가 찾아와서는 김치와 음식들을 한 아름 주고 가셨대. “ “헐.. 대박!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그렇지 엄마! 야호…. 신난다. 저렇게 신난 아들의 모습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 8 일요일이 두 번 더 지난 한가로운 오후 “엄마,,, 엄마,,, 친구가 그러는데 그 아주머니가 또 나타나셨는데... 이번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집 안 구석구석 청소까지 다 해 주시고 가셨대.. 진짜 대박이지,,, 그렇지 엄마.. 그 아주머니 천사다, 그렇지?.. “ ◈ 9 연신 그 아주머니 칭찬에 침이 말라 가는 아들을 보고선 “너 그러다 그 아주머니를 이 엄마보다 더 좋아하겠다? “ “벌써 그 아주머니 팬이 되었는걸요. 아마 조만간에 엄마보다 더 좋아질 것 같은데요.... “ “뭐야? 이놈의 자식이.....” ◈ 10 그렇게 아들은 매일매일 특종을 실어 나르는 신문기자처럼 친구네 집 소식을 저에게 전하는 게 일이 되어갔습니다. 노을이 구름에 업혀 가는 해 질 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저의 핸드폰으로 아들이 보낸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을 방금 보았다고요……“ ◈ 11 친구네 집에서 나오는 저의 모습을 아들이 본 것 같네요. “띠 릭.. “ 다시 또 울리는 아들의 문자 “행복을 퍼주는 우리 엄마.. 내 엄마라서 너무 고맙고 사랑해요.... “ 필요한 자리, 그 자리에 있어 주는 행복 나무 씨앗은 나누면 커지나 봐요. ◈ 12 어느새 내 마음에 심어져 있는 '행복 나무', 아들과 함께 예쁘게 키워 보렵니다.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