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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步行)이 신약(神藥)*

창산 2020. 7. 31. 19:16




길 - 최희준 (전자올견)


보행(步行)이 신약(神藥)
- 토끼똥이 신약? -

조 참봉은 요즘 거시기가
영 맥이 없다.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떠벌리던 말수도
부쩍 줄었다.



추월관에서 술을 마시고
수 기생이 붙여주는

제일 예쁜 기생과
뒷방에 깔아놓은
금침으로 들어
갔건만...

식은땀만 흘리다가
얼굴도 못 들고
나와버렸다.



가끔씩 안방에서 부인도
안아줘야 집안이
편한데,

어린 기생한테도 안 서는
놈이 부인한테
설쏘냐.

“내 나이 이제 마흔하나.
이렇게 인생이 끝나서는 안되지.”


조 참봉은 황 의원한테
매달렸다.

백년 묵은 산삼 우황 사향
해구신에다 청나라에서
들어온 경면주사까지
사 먹느라,

문전옥답 열두마지기가
날아갔다.
그러나 효험은
없었다.



이 기생 저 기생,
그리고 마음 편히 느긋하게
하겠다고

안방마님 치마도 벗겼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황 의원은 이번에 다른
처방을 내렸다.

“조 참봉, 아무리 명약이라도
가슴속에서 불꽃이
타오르지 않으면
허사야.

어부인, 기생들 모두
닳고 닳은 헌것들
이잖아.

전인미답의 새것을
품어봐요.”




조 참봉은 황 의원의 권고대로
논 다섯마지기를 주고
소작농의 열다섯
숫처녀를 첩실로
맞아들였다.

잔뜩 기대를 했건만 역시,
자라목마냥 움츠린
양물은 기어 나올
줄 몰랐다.

조 참봉은 울화통이
치밀어
팔을 걷어붙이고
황 의원을
찾아갔다.

“야 이 돌팔이 새끼야.
네놈은 오늘 내 손에
죽었다.

네놈 처방을 따르다 문전옥답
몇마지기가 날아간

줄 알아?”




황 의원에게 주먹질을 하고도
분이 안 풀려 주막에 가서
술을 퍼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

삼경이 돼서 뒤뚱뒤뚱
집으로 돌아와 대문을
두드리려니

문간방에서 터져 나오는
간드러진 신음소리에
조 참봉은 돌처럼
굳었다.

황소가 진흙 뻘밭을 걸어가는
것 같은 소리...

커다란 파도처럼 끊임없이
살과 살이 부딪히며
내는 찰싹거리는
울림...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여인의 감창...

조 참봉은 이튿날
행랑아범을 사랑방으로
불러 술 한잔 따르며
물었다.

“자네가 나보다 두살인가
많지 아마?”


꿇어앉아 조 참봉의
술잔을 받은
행랑아범은 어찌할 줄
몰랐다.

“그러한 줄 알고
있습니다.”




조 참봉은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자네는 며칠에 한번씩
밤일을 치르는고?”

“부끄럽습니다.
사흘 터울로….”


조 참봉이 깜짝
놀랐다.

“비결이 뭔가?”

이튿날 행랑아범은 단봇짐
하나 메고,

조 참봉은 맨몸으로 그의
뒤를 따라 집을
나섰다.

첫날은 이십리도
못 걸었다.

턱과 목이 구분이 안되는
데다 배는 산더미처럼
솟았고

걸음걸이는 뒤뚱뒤뚱하며,
평지를 걷는 데도
헉헉 숨이 차고
땀은 비오듯
쏟아졌다.

어둠살이 내릴 때 주막에
들어간 조 참봉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쓰러져 잠들었다.

이튿날 아침을 먹고 또 걸으며
조 참봉 왈.

“오랜만에 잠을 푹 잤네.”

그날 이십리,
다음날은 고개를 넘느라
시오리를 걸었다.

“자네 혼자 걸으면
하루에.”


조 참봉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행랑아범이
답했다.

“고개가 있으면 팔십리,
평지는 백리쯤 거뜬히
걷지요.”


조 참봉은 헉헉거리며
물었다.

“그 음양수를
마시러 가는데 왜 말을
타면 안되는 건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말을 타거나 가마를 타고
가서 그걸 마시면 말짱
허사가 됩니다요.”


조 참봉은 한숨을
푹 쉬었다.

“얼마나 가야
그 약을 먹고 약수를
마실 수 있나?”

“참봉 어르신 걸음으로는
석달 넘게 걸립니다.”


바위에 털썩 주저앉은
조 참봉이 탄식을
하더니만

두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거짓말이 아니지?”

행랑아범이 단호히
말했다.
“거짓이면 삼년 치 소인의
새경을 받지 않겠습니다.”


어느 날,
소피를 보고 난 조 참봉이
고함을 쳤다.

“보인다, 보여!
내 양물이 보이네!”


행랑아범이 씩 웃었다.

올챙이처럼 배가 튀어나와
자신의 양물을 보지
못했는데,

이제 그걸 보게 됐으니 배가
쏙 들어갔다는 소리다.

걸음도 빨라져 하루에
오십리는 거뜬했다.

걸음에 지쳐 주막에 들어가면
술 한잔 마시지 않고
쓰러져코를 골았다.

두달이 돼갈 때,
함경도 땅으로 들어가자
조 참봉의 걸음은

더욱 빨라져 하루에
칠십리나 걸었다.

집 떠난 지 두달 스무닷새째.
조 참봉이 산속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자



행랑아범이 환약 세알과
표주박에 담긴 물을
건넸다.

환약을 털어 넣고 음양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날 조 참봉은 온정리
기생집에 들어갔다.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기생을 기절시켰다.

조 참봉은 희색이
만면했다.

“그 명약을 한번 더 먹고
음양수를….”

행랑아범은 고개를
저었다.



함경도 끝자락에서 밀양
집으로 돌아갈 땐
번개처럼 내달렸다.

돌아가서 약속대로
조 참봉은 행랑아범에게
삼천냥을 줬다.

사실,
조 참봉이 마신 물은
개울물이었고,

환약은 토끼
똥이었다.

행랑아범은 조참봉 집을
떠나며이런 글귀를
남겼다.

“‘步行(보행)이 神藥(신약)’

출처 :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