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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필유린(德必有隣)

창산 2025. 1. 23. 09:20







덕필유린(德必有隣)

조선 철종때 경상도
상주 땅에,

서씨 성을 가진 농부가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그냥 '서선달'이라고
불렀다네요

​ 원래 선달이란 과거
시험에 급제는 했으나,

아직 벼슬을 받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지만,
이 사람은 무슨 급제와는
관련이 없었고,

그냥 사람이 심성이 착하고
무던해서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 서선달은 남의 땅을 빌려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인가는
봄이 왔어도 그해 농사를
지을 비용이 없을 정도로
곤궁 하였습니다.

​ 생각다 못한 그는 부산
쌀가게에서 장부를
담당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큰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효자 아들은 주인께
통사정을 하여 6개월치
월급을 가불받아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서선달은 100리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느 고개를 넘던 중
그만 돈을 흘려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반대쪽에서
고개를 넘어오던 한
양반이 이 돈꾸러미를

발견했는데, 세어보니
백냥이나 되는
큰돈이었습니다.

​한편 서선달은 30리는
더 가서야 돈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는데,

전 재산을
잃어버렸으니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 그런데 다행이 돈을
발견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횡재했다고 좋아하는
하인에게 일러
말합니다.

​잃은 사람은 반드시
찾아온다.

​ 목숨같이 귀한 돈을
잃은 그 사람은 얼마나
속이 탈꼬..!

​그 노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몇 시간이고,
돈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과연 한참 후 서선달이
얼굴이 훍빛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주운돈을 서선달에게
돌려주자, 서선달은
어른께서 제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하며 돈을
찿아준 은혜를 갚겠다며
사례를 하려 하는데...

그 사람은 은혜랄게
뭐가 있소,

당연한 일인데.
. 하고는 펄쩍뛰며
사양을 했습니다.



그는 주운 돈 100 냥을
서선달에게
전달을 해 준뒤 가던
길을 갔습니다.

서선달도 다시 집을 향
해 갔고, 이윽고 어느
강가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마침 한 소년이
물에 빠졌는데 구경꾼은
많아도

누구 하나
뛰어들어 구해 줄 생각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헤엄을 못치는
서선달이
외쳤습니다.

​누구든지 저소년을
구해내면 백냥을
주겠소"

​그러자 어느 장정이
뛰어들어 소년을 살려
냈습니다.

​ 죽다 살아난 도령이
선달에게 말하기를
정말 고맙습니다.

​어른이 아니었으면
저는 수중고혼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희 집은 안동에서
제일 큰 부자인데
함께 가시면 백냥을
갚아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서선달은 무슨 사례를
받고자 한일은
아니었으나 자기의
사정도 있는지라 같이
안동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

안동의 총각집은 과연
고래등 같은 부자집
이었습니다.

​그때
소년의 부친이 득달같이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부친이란
사람은,
다름 아닌 서선달의
돈을 찾아준 바로 그
노인이었습니다.

​온 재산을 털어 제
아들을 구해 주시다니
당신은 진정 의인이요
정말 고맙소이다.

​ 아닙니다.
댁의 아드님은
어르신께서 살려내신
것입니다.

​ 제가 돈을 잃었다면
무슨 수로
살렸겠습니까

​겸손의 말씀
이십니다.

​7대독자 외아들을
살려주신 은혜 백골이
되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안동 권 부자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살려준 보답으로
돈 천냥을
나귀에 실어 서선달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서선달이 사는
상주 고을을 찾아와
백섬지기 전답까지
사주고 돌아갔습니다.

​이 일은 후에
조정에까지 알려져
안동과 상주 두 고을은
모두 조정으로부터
후한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참 착하게 살기가
힘든 시대입니다.

​착한 것이 오히려
바보처럼 여겨지는
안타까운 시대입니다.

​하지만
"덕필유린"입니다.

덕이 있고 심성이 착한
사람은 반드시 주위에
돕는 손길이 있습니다.

​ 착하고 양심적으로
사는것이 바보같아
보이지만 사람답게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이라는것을
명심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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