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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불효교(孝不孝橋)*

창산 2024. 11. 27. 09:16





(그리운 시냇가) - Adamo


🍒효불효교(孝不孝橋)🍒

뼈대 있는 가문이라 하여
어린 나이에 시집
왔더니

초가 삼간에 화전밭
몇 마지기가
전 재산 이였다.

​정신없이 시집 살이 하는
중에도 아이는 가졌다.

​부엌일에 농사일 하랴,
길쌈 삼으랴,

저녁 설거지는 하는 둥
마는 둥 파김치가 돼
안방에 고꾸라져
누우면,

​신랑이 치마를 올리는지
고쟁이를 내리는지

​비몽 사몽 간에
일을 치른 모양 이다.

아들 여섯 낳고
시부모 상 치르고
또 아이 하나 뱃속에 자리
잡았을 때

​시름 시름 앓던 남편이
백약이 무효, 덜컥 저
세상으로 가 버렸다.

​유복자 막내 아들을 낳고
유씨댁이 살아 가기는
더 바빠 졌다.

​혼자서 아들 일곱을
키우느라
낮엔 농사일, 밤이면
삯바느질로

​십여년을 꿈같이 보내고
나니
아들 녀석 일곱이
쑥쑥 자랐다.

​열여섯 큰아들이
“어머니! 이젠 손에 흙
묻히지 마세요” 하며
집안 농사일을 시원
시원하게 해치우고,

둘째는 심마니를 따라
다니며
약초를 캐고 가끔씩 산삼도
캐 쏠쏠하게
돈벌이를 하고,

​셋째는 형들이 등을 떠밀어
서당에 다니게 됐다.



​일곱 아들이 효자라
맛있는 걸 사다
제 어미에게 드리고

​농사는 물론 부엌일도
손끝 하나 못
움직이게 했다.

​살림은 늘어나고 일을
하지 않으니
유씨댁은 몇달 만에
새 사람이 됐다.

​새까맣던 얼굴이 박꽃처럼
훤해지고
나무 뿌리 같던 손이
비단결처럼 고와 졌다.

​문제는 밤이 길어진
것 이다.

베개를 부둥켜 안아봐도,
​허벅지를 꼬집어 봐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유씨댁은 바람이 났다.

​범골 외딴집에 혼자 사는
홀아비 사냥꾼과
눈이 맞았다.

농익은 40대 후반 유씨댁이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남자의 깊은맛을
알게된 것이다.

​일곱 형제가 잠이 들면
유씨댁은 살며시 집을
나와
산허리를 돌아
범골로 갔다.



어느 날 사경녘에 온몸이
물에젖은유씨댁이다리를
절며 집으로 돌아 왔다.

개울을 건너다 넘어져
발을 삔 것이다.

​일곱 아들은 제 어미 발이
삐었다고
약방에 가서 고약을
사오고

​쇠다리 뼈를 사다 고아
봉양을 다했다.

​며칠 후 유씨댁은
발의 부기가 빠지고 걸을수
있게 되자
또다시 아들 일곱이 잠든 후
집을 빠져나와
범골로 향했다,

​유씨댁은 깜짝 놀랐다.
개울에 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일곱 아들의 작품
이었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효불효교(孝不孝橋)라
불렀다.

이승에 있는 어미에게는
효요,
저승에 있는 아비에게는
불효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으며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다리

(경상북도 사적
제 457호 지정)이다.

​일명 칠성교로
불리기도 한다.

​요즈음 자식들은
우리들에게 무슨
다리를 놓아 줄까?

= 모셔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