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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밭에 엎드린 개(麻田伏犬)*

창산 2023. 4. 28. 13:34







e1905822 삼밭에 엎드린 개(麻田伏犬)

부안현(扶安縣)에
유씨 성을 가진 한 선비가
있었다.

이 선비는 집안의 여종과
사사로운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아내의 감시가 매우 심해
그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

그런데 마침 집 옆에
삼밭이 있어 삼이
자라니,



여종이 뜰 한 쪽에서
절구질을 할 때면
삼밭에 들어가

절구질하는 곳으로 은밀히
다가가서는,
삼밭으로 몰래 끌어들여
재미를 보곤 했다.

그런데
그 짓도 오래되다 보니
아내가 눈치를
채고 말았다.

절구질하던 여종이 자주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알고

유심히 살피던 아내가
그 광경을 목격한
것이었다.



'이 영감이 온갖 방법을
다 써가며 여종을
꾀는구먼.'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한번 혼쭐을 내주려고
마음먹었다.

곧 아내는 여종에게
절구질을 시켜 놓고
몰래 살피니 ,

어느새 남편이 삼밭으로
들어가는지라

얼른 뜰로 내려가
여종에게 다른
일을 시키고,

자신이 대신 절구질을
했다.



그러자 삼밭에서 남편이
바라보다가 눈에 띄지
않으려고

바닥에 납짝 엎드려
숨으면서 ,
웃옷을 벗어 몸을
가렸다.

그런데
그 옷이 흰색이다보니,
삼 줄기 사이로
허연 것이 눈에 띄는
것이었다 .

이에 아내가 여종을 불러
삼밭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얘야! 저기 삼밭 속에
허연 것이 보이는데,
그게 무엇이냐?“



"예, 마님. 방금 전
이웃 집 흰 개가
부드러운 쌀겨를 먹기에
쫓아냈는데,

아마도 거기로 들어간
모양입니다.“

이렇게 여종이 거짓으로
둘러대니,



아내는 시치미를 뚝 떼고
큰소리로 꾸짖어
말했다.

"아니, 무슨 늙은 개가
우리 쌀겨를 훔쳐
먹고,

삼밭에 들어가
삼까지 못쓰게 만들고
있단 말이냐?



내 이 놈, 혼 좀 내줘
야겠구나.“

이러면서 손에
쥐고 있던
절굿공이를 냅다
던지자,

그것이 날아가 선비의
옆구리를 맞고
떨어졌다.



이에 선비는 너무 아팠지만,
겨우 '깽깽깽' 거리는
개 울음소리만
내면서

설설 기어 저쪽으로 달아나
버렸더라 한다.

출처:김영동교수의 고전